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입품을 사오는 비용이 비싸지기 때문에 국내 물가도 올라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올랐다고 하는데 마트에 가보면 모든 상품가격이 다음 날 바로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환율이 안정된 뒤 한참 지나서 식품이나 생활용품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핵심은 환율 상승이 소비자가격까지 전달되는 데 여러 단계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은 환율 상승이 원화 가치 하락을 의미하며, 수입 원자재 가격을 높여 국내 물가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흐름을 단순하게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달러 환율 상승
→ 수입가격 상승
→ 기업의 원재료·중간재 비용 상승
→ 생산자 가격 상승
→ 도매·유통가격 변화
→ 소비자가격 상승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가격은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환율 상승과 물가 사이에 숨어 있는 시간차를 살펴보겠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물가도 오르는 이유
먼저 환율의 의미부터 간단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달러 = 1,300원
에서
1달러 = 1,400원
으로 상승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같은 100달러짜리 물건을 수입하더라도 단순 계산으로는 필요한 원화가 13만 원에서 14만 원으로 늘어납니다.
한국은 원유와 천연가스뿐 아니라 곡물, 산업용 원자재와 중간재 등 다양한 상품을 해외에서 수입합니다.
따라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기업이 같은 수입품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원화 비용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도 환율 상승은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을 통해 국내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환율이 오늘 5% 올랐다면 내일 마트 가격도 5% 올라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첫 번째 이유, 기업은 이미 사놓은 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재고입니다.
마트에 있는 수입상품이나 국내 제조업체가 사용하는 원재료를 매일 그날 환율로 사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들은 필요한 물건을 미리 확보합니다.
예를 들어 한 식품회사가 해외에서 밀을 대량으로 수입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회사는 몇 달 동안 사용할 밀을 이미 창고에 보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원달러 환율이 갑자기 상승하더라도 이미 확보한 원재료의 구매가격이 다시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당장은 기존 원가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고가 떨어지고 새로운 환율로 원재료를 다시 수입하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환율 상승
→ 기존 재고 사용
→ 재고 감소
→ 높은 환율로 신규 수입
→ 원가 상승
→ 제품가격 반영 검토
이 과정 때문에 환율과 소비자가격 사이에 시간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 환율 상승이 먼저 수입물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환율이 움직였다고 곧바로 소비자물가로 넘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은행이 설명하는 대표적인 가격 전달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외화기준 수입가격
→ 원화기준 수입물가
→ 생산자물가
→ 소비자물가
한국은행의 해외물가 전가효과 분석에서도 이러한 단계적인 전달경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유 가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원유를 직접 구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유를 수입한 뒤 정제하고, 휘발유나 경유 등으로 만들어 유통해야 합니다.
따라서
원유 수입가격 상승
→ 정유사 비용 상승
→ 석유제품 가격 변화
→ 운송비 변화
→ 상품·서비스 가격 변화
처럼 여러 단계를 거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 역시 수입물가, 생산자물가, 소비자물가가 서로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합니다.
세 번째 이유, 기업이 원가 상승을 바로 소비자에게 넘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올라 수입비용이 늘었다고 기업이 다음 날 바로 판매가격을 올릴 수 있을까요?
현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가 다른 제품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라면 회사의 원가가 5% 올랐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경쟁사 제품가격이 그대로인데 A사만 즉시 5%를 올리면 소비자는 더 저렴한 경쟁제품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일정 기간 원가 상승분을 자체적으로 부담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마진 감소를 감수할 것인가
또는
제품가격을 올릴 것인가
를 판단해야 합니다.
특히 환율 상승이 일시적인지 장기적인지도 중요합니다.
환율이 잠깐 올랐다가 다시 내려갈 것으로 판단하면 가격을 바로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높은 환율이 오랫동안 유지된다면 기업이 비용 상승을 계속 흡수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때부터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이유, 환율 상승분이 소비자가격에 100%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환율 전가율입니다.
환율이 10% 올랐다고 소비자물가가 반드시 10%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은행의 과거 연구에서는 환율 변동이 원화 기준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 소비자물가로 전달되는 정도가 서로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즉 환율 충격이 단계별로 그대로 100% 전달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상품가격에는 수입원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제품가격에는
원재료
인건비
임대료
광고비
운송비
유통마진
세금
등 여러 비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입원재료가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면 환율 상승의 영향도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수입 원재료 의존도가 높은 제품은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율이 똑같이 올라도 품목별 가격 변화가 다른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이유, 환율과 국제 원자재가격이 반대로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국내 수입비용은 환율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해외에서 사오는 상품 자체의 달러 가격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5% 상승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국제 원유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면 어떨까요?
환율 상승은 수입가격을 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국제 원유가격 하락은 반대로 수입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즉
환율 ↑ = 수입비용 상승요인
이지만
국제 원자재가격 ↓ = 수입비용 하락요인
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뉴스에서 환율이 올랐다고 해서 모든 수입품 가격이 같은 방향과 같은 폭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어떤 물가가 먼저 영향을 받을까?
모든 상품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수입 비중이 높은 품목이나 국제 원자재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는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영향을 확인하기 쉽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원유와 석유제품, 곡물, 커피·카카오 같은 식품 원재료, 각종 산업용 원자재와 일부 수입제품 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최종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는 시점은 각각 다릅니다.
예를 들어
환율 상승 → 원유 수입비용
은 비교적 직접적이지만,
환율 상승 → 밀 수입가격 → 밀가루 → 빵 생산비 → 유통 → 빵 가격
은 단계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는 환율 상승을 상품별로 서로 다른 시점에 체감할 수 있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외식비도 올라갈까?
가능성은 있지만 환율 하나만으로 외식비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식당에서는 수입 식재료뿐 아니라
인건비
임대료
전기·가스요금
배달·물류비
국내 농축산물 가격
등 여러 비용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환율 상승으로 일부 식재료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식당이 바로 메뉴 가격을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식재료비뿐 아니라 인건비와 임대료 등 여러 비용이 동시에 상승하면 가격을 조정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도 수입물가 등에서 시작된 비용 상승 압력이 국내 가격에 파급될 수 있으며, 여러 비용 상승이 겹치는 환경에서는 기업의 가격 전가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환율 상승이 물가에 반영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정확히 몇 개월이라고 모든 시기에 동일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상품 종류와 기업의 재고, 환율 상승의 지속기간, 국제 원자재가격, 경기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국은행의 과거 연구에서는 환율 변동의 국내물가 전가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으며, 당시 분석에서는 상당 부분이 1분기 안에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또한 한국은행은 2022년 고환율·고물가 상황을 분석하면서 환율 상승기와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는 환율의 물가 전가율이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환율이 10% 올랐으니 다음 달 물가가 몇 % 오른다.”
처럼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환율의 상승폭보다 상승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도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환율이 다시 내려가면 오른 물가도 바로 내려갈까?
여기서 지금까지 작성해 온 글들과 연결됩니다.
환율이 다시 내려가더라도 이미 오른 소비자가격이 곧바로 내려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업이 높은 환율일 때 구매한 원재료 재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 사이 인건비나 운송비 등 다른 비용이 올랐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 올린 판매가격을 다시 내리는 데는 경쟁상황과 수요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환율 ↑ → 물가 즉시 ↑ X
인 것처럼
환율 ↓ → 물가 즉시 ↓ X
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기존 글인 ‘환율이 내려도 수입제품 가격이 안 내려가는 5가지 이유’와 내부링크를 걸면 좋습니다.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는 무엇이 다를까?
두 개념을 구분하면 환율 뉴스를 이해하기 훨씬 쉬워집니다.
수입물가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상품의 가격 변화를 나타냅니다.
환율과 국제 원자재가격 변화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습니다.
소비자물가
소비자가 실제로 구매하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전반적인 가격수준을 나타냅니다.
여기에는 수입품뿐 아니라 국내 상품과 서비스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환율 상승
→ 수입물가 상승 압력
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지만,
수입물가 상승
→ 소비자물가 동일한 폭 상승
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에 기업과 유통업체의 가격 결정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율 뉴스에서 물가를 판단할 때 확인해야 할 5가지
1. 환율이 얼마나 오래 높은 상태인가?
하루 이틀의 급등과 몇 달 동안 지속되는 상승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다릅니다.
2. 국제 원자재가격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환율 상승과 국제가격 하락이 서로 영향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3. 수입물가지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환율이 실제 수입비용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4. 생산자물가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기업 단계에서 비용 압력이 나타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5. 소비자물가 중 어떤 품목이 오르고 있는가?
전체 물가 숫자 하나보다 석유류·가공식품·외식 등 세부 품목을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환율과 물가에 대한 흔한 오해
환율이 10% 오르면 물가도 10% 오른다?
그렇지 않습니다.
환율 상승분이 최종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율이 오늘 급등하면 다음 날 마트 가격도 오른다?
대부분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재고와 계약, 생산, 유통 과정을 거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환율이 내려가면 물가 문제도 바로 해결된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누적된 원가 상승과 인건비·임대료·물류비 같은 다른 비용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올라도 국내 물가가 바로 오르지 않는 이유 핵심 정리
환율 상승은 분명 국내 물가의 상승 압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율에서 소비자가격까지는 여러 단계가 존재합니다.
원달러 환율 ↑
→ 수입비용 ↑
→ 원재료·중간재 비용 ↑
→ 생산자물가 ↑
→ 유통단계
→ 소비자가격 ↑
그리고 이 과정에는 재고, 계약, 기업의 가격정책, 국제 원자재가격, 시장경쟁이라는 변수가 개입합니다.
그래서 경제뉴스를 볼 때는
“환율이 올랐다.”
에서 끝내기보다
“그 환율 상승이 지금 가격 전달 과정의 어디까지 왔을까?”
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전 글에서는 반대 방향도 살펴봤습니다.
환율 ↓ → 수입제품 가격 즉시 ↓ X
환율 ↓ → 해외직구 가격 즉시 ↓ X
이번에는
환율 ↑ → 국내 소비자물가 즉시 ↑ X
입니다.
결국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경제지표와 실제 생활비 사이에는 가격이 전달되는 경로와 시간차가 존재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생활 속 이슈 해설’ 시리즈에서 계속 살펴보고 있는 핵심입니다.
참고자료
한국은행, 환율이란 무엇인가요?
https://www.bok.or.kr/portal/bbs/B0000273/view.do?menuNo=700805&nttId=10056517
한국은행, 해외물가의 국내물가 전가효과 분석
https://www.bok.or.kr/portal/bbs/P0002347/view.do?menuNo=200432&nttId=184994
한국은행, 체감물가와 소비자물가 왜 다를까
https://www.bok.or.kr/portal/bbs/B0000218/view.do?menuNo=200&nttId=10017572
한국은행, 물가의 추가 상승압력과 외환부문의 리스크 증대로 정책대응을 강화
https://www.bok.or.kr/portal/bbs/B0000347/view.do?menuNo=201106&nttId=10073284
한국은행, 우리나라와 미국의 근원인플레이션 압력 평가
https://www.bok.or.kr/portal/bbs/B0000347/view.do?menuNo=201106&nttId=10077141